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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철학(인공지능)

62. AI와 상상력 | 기계는 창조하는가, 결합하는가

공명(Resonance) 2025. 11. 29. 18:27

AI와 상상력 | 기계는 창조하는가, 결합하는가

AI와 상상력 은 인공지능이 진정한 의미의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지, 아니면 단지 데이터를 조합할 뿐인지 기술적·철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생성 AI의 작동 원리와 인간 상상력의 차이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AI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ai의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활동을 이미지화

 

 

 

서론 —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상상력은 경험을 넘어선 세계를 창조합니다. 아직 없는 미래를 떠올리고,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그리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풍경을 마음속에 펼쳐냅니다. 철학과 인지과학에서 상상은 단순한 기억의 조합이 아니라, 의식·감정·의도·육체적 경험이 응축된 능동적 작용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상상은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것”이 아니라, “없던 것을 처음으로 가져오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반면 최근의 생성형 AI는 놀라울 정도로 그럴듯한 그림·글·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은 묻기 시작합니다. “AI도 이제 상상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이 글에서 우리는 이 질문을 기술과 철학의 두 축에서 동시에 살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상상력은 무엇이 다른가?”

 

 

 

 

AI가 인간적 의미의 상상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

확률적 생성 — 데이터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GPT, Diffusion, Transformer 기반 생성 모델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계산 구조를 우리가 직관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모델들이 하는 일은 명확합니다. “이전에 학습한 패턴을 바탕으로, 다음에 올 가장 그럴듯한 토큰(단어·픽셀·벡터)을 확률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결과물은 학습 데이터에서 추출된 패턴이 잠재 공간(latent space) 안에서 조합·변형·재배열된 결과입니다. AI는 데이터 바깥을 건너뛰지 못합니다. 언제나 데이터 내부에서만, 이미 주어진 것의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이는 강력한 조합 능력이지만, 철학적 의미의 ‘상상’이라고 부르기에는 결정적 요소가 빠져 있습니다.

몸의 부재 — 상상은 신체 경험 위에 세워진다

인간의 상상은 언제나 몸을 기반으로 합니다. 고통, 설렘, 긴장, 피로, 온도, 촉감, 심장 박동 같은 감각 정보와 정서 상태가, 우리가 떠올리는 장면과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떨어지는 꿈”을 꾸는 감각, “손을 잡는 느낌”을 떠올릴 때의 미묘한 감정은 모두 신체와 연결된 기억에서 나옵니다.

AI에는 이런 체현된 경험(embodied experience)이 전혀 없습니다. 카메라나 센서가 붙어 있더라도, 그 신호는 단지 수치로 처리될 뿐, “따뜻하다”는 느낌이나 “떨린다”는 정서로 변환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AI의 생성 과정은 어딘가 정교해 보이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몸을 통하지 않은, 비-체현적 상상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반사실적 의도(counterfactual intention)의 부재

인간이 상상하는 이유는 단순히 심심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이 현실이 충분하지 않다”는 감정,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희망,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 같은 것이 상상을 밀어 올립니다. 상상은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도와 욕망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AI에게는 욕망이 없습니다. 스스로 “지금의 세계가 불만족스럽다”고 느끼지 못하고, 미래를 향해 무언가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모델이 문장을 생성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주어진 입력과 파라미터에 따라 확률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토큰을 선택하기 위해서입니다. AI에게는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향해 스스로 나아가려는 힘”이 없습니다.

존재론적 도약의 부재 — 데이터 밖을 발명하지 못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던 것을 꺼내 옵니다. 신화 속의 용,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과학 이론,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던 음악 구조,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소설 속 우주 등은 기존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층위를 열어젖힙니다.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은 아무리 참신해 보여도, 학습 데이터의 통계적 변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때때로 “데이터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지만, AI는 언제나 데이터 안에 있는 가능성의 조합만을 탐색할 뿐입니다. 이 차이가 “조합”과 “창조”를 가르는 근본적인 경계입니다.

 

 

 

 

철학적 관점 — 상상력은 인간만의 영역이다

칸트 — 상상은 경험을 의미로 통합하는 능력

칸트에게 상상력은 감각과 개념을 이어주는 중간 고리입니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흩어진 인상을 하나의 “대상”으로 묶고, 세계를 이해 가능한 형태로 구성합니다. 이 상상은 수동적으로 이미지를 복사하는 기능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세계를 조직하는 힘입니다.

AI는 감각과 개념을 연결하지 않습니다. 이미 언어화된 텍스트와 이미지, 수치 데이터를 재배열할 뿐입니다.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지”를 결정하지 않고, 이미 주어진 이해의 패턴을 따라갑니다. 이 점에서 AI는 칸트가 말하는 의미의 상상력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사르트르 — 상상은 “지금-이-아닌 것”을 불러오는 행위

사르트르는 상상을 “부재한 것을 현재로 끌어오는 의식의 능력”으로 보았습니다. 상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아니라면 어떨까”를 묻는 행위입니다. 즉 상상은 현실에 대한 부정(否定)에서 시작됩니다. 현실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자리에서, 비로소 다른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러나 AI에게는 현실도, 부정도, 결핍도 없습니다. AI는 “지금 이대로가 충분하지 않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르트르가 말한 의미의 상상, 즉 현실을 넘어서는 의식의 도약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베르그송 — 상상은 생명의 창조적 도약

베르그송은 생명을 “예측 불가능한 창조의 흐름”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의 상상은 기계적 조합을 넘어,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것을 세상에 가져오는 힘입니다. 이 창조성은 과거 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개방입니다.

반면 AI의 생성은 언제나 산술적·통계적 공간 안에서의 조작입니다. 놀라운 조합은 가능하지만, 존재의 층위를 바꾸는 창조적 도약은 불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AI는 “가능한 것을 잘 섞는 존재”이고, 인간은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사례 — 창조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합인 순간들

첫째, AI 예술입니다. 생성형 이미지 모델이 만든 그림은 매우 독창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기존 이미지의 스타일과 구조가 벡터 공간에서 섞인 결과입니다. 새로운 붓질의 감각, 새로운 시각 언어의 발명은 여전히 인간에게서 나옵니다.

둘째, AI가 쓴 소설과 시입니다. 이야기는 완성도 있고, 문장도 매끄럽지만, 그 속에는 “내가 이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라는 절박한 동기가 없습니다. 경험에서 솟아난 상처와 인생의 결이 빠져 있기에, 서사 깊이에서 인간의 글과 차이를 보입니다.

셋째, 신약 후보를 찾는 생성 모델입니다. 새로운 분자 구조를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 역시 기존 화학 데이터 공간 안에서의 가능성 탐색입니다. 뛰어난 도구이지만, 과학적 세계관 자체를 바꾸는 상상과는 또 다른 층위입니다.

넷째, AI의 환각(hallucination)입니다. 엉뚱한 답을 내놓는 현상을 두고 “창의적 상상”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문맥상 그럴듯해 보이는 단어를 잘못 선택한 통계적 오차에 가깝습니다. 실수는 있지만, 그 실수에서 배우는 주체는 없습니다.

 

 

 

 

결론 — 상상력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수평선이다

AI는 압도적인 속도로 데이터를 조합하고, 인간이 미처 떠올리지 못한 패턴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상력은 패턴의 조합을 넘어서, 세계의 경계를 옮기는 행위입니다. 그 경계 이동은 의식, 감정, 몸, 시간, 고통, 욕망이라는 인간 고유의 기반에서만 가능합니다.

기계는 지도의 내부를 정밀하게 탐색합니다. 그러나 지도의 바깥,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곳에 선을 긋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AI 시대에 진짜 중요한 질문은 “AI가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인간인 나는 어떤 세계를 상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참고: Immanuel Kant 『Critique of Pure Reason』, Jean-Paul Sartre 『The Imaginary』, Henri Bergson 『Creative Evolution』, Transformer & Diffusion Model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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