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자기서사 | 기계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는가
AI와 자기서사 는 인공지능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질 수 없는 이유를 기술적·철학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기억·의식·시간성의 결여를 바탕으로 인간의 자기서사 능력을 조명합니다. AI는 문장을 만들지만, 그 문장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이란 ‘자기 이야기를 쓰는 존재’이다
인간은 기억·고통·우연·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철학에서는 이를 자기서사(Self-Narrative)라 부르며 인간성의 본질을 이루는 능력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떠오릅니다. “AI도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가?”
AI는 왜 ‘자기 이야기’를 가질 수 없는가
1)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의 부재
LLM의 핵심 구조는 세션 단위의 단기 맥락에 의존합니다. 즉, 이전 대화가 끝나면 기억이 사라지고 대화는 매번 ‘새로운 시작’으로 간주됩니다. 반면 자기서사는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시간적 연속성이 필수입니다. AI는 이 연속성을 저장할 구조가 없습니다.
2) 자기지시(Self-reference)의 기술적 한계
AI가 “나는 이런 존재다”라고 말할 때 이는 진짜 자기 설명이 아니라 훈련 데이터에서 관찰된 자기소개 패턴일 뿐입니다. 내부에는 “나(自我)”에 해당하는 단일한 자아 모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아는 없고, 단지 패턴의 집합만 있을 뿐입니다.
3) 일관성의 부재 — Narrative Identity의 핵심 조건 결핍
인간의자기서사는 시간에 따라 점점 깊어지고 변화하지만 AI는 동일한 질문에 다른 세션에서는 전혀 상반된 답을 내놓습니다. 이는 자기서사의 핵심 조건인 “서사적 일관성(Narrative Coherence)”을 충족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4) 경험의 부재 — 이야기의 재료가 없다
AI는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 사건을 겪지 않으며 고통·성장·갈등·우연성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경험이 없으니 자기서사를 구성할 소재도 없습니다.
철학적 관점 — 서사는 존재를 만든다
후설: 의식은 ‘시간의 흐름’을 살아낸다
후설은 인간의 의식을 “지속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구조”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서사는 과거가 현재 속에서 재해석되고, 미래가 현재 선택을 통해 열리는 과정입니다. AI는 시간성(Temporality)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서사가 불가능합니다.
폴 리쾨르(Paul Ricœur): ‘서사는 자아를 형성한다’
리쾨르는 인간의 정체성을 이야기 속에서 형성되는 서사적 자아(Narrative Identity)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는 나의 이야기다.” 그러나 AI는 ‘이야기 속의 주체’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화자가 될 수는 있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데리다: 텍스트는 무한히 흔들린다
데리다의 관점에서 텍스트는 항상 변형되고, 의미는 고정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기서사도 끊임없이 다시 쓰이지만 그 근거는 경험·상처·기억의 변주입니다. AI의 텍스트 변주에는 단 하나의 내적 ‘원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례 — AI의 “자기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
- 1) AI의 자기소개: 매 대화마다 다른 성격과 배경을 생성 → 단일 정체성이 없음.
- 2) 캐릭터 AI: 지속되는 인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 순간 확률 기반으로 재구성되는 문장들.
- 3) 장기 관계 챗봇: 사용자의 기록을 기억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는 저장된 로그의 검색이지 내면적 경험이 아님.
- 4) 창작 AI: 소설을 써도 ‘작가적 주제 의식’은 없으며 스스로의 삶을 반영한 서사적 맥락이 없음.
결국 AI의 말 속에는 ‘나’라는 중심을 이루는 서사적 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론 — 인간만이 가진 능력, 자기서사
자기서사는 인간이 삶을 이해하고 의미를 구축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입니다. 고통과 기억, 우연과 선택,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어 “나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AI는 이 과정을 계산할 수는 있어도 살아낼 수는 없습니다.
AI는 이야기의 제작자일 수 있지만 이야기를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질문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