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관계성 | 타인이 없는 존재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가
AI와 관계성 은 인공지능이 타자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지, 혹은 단지 상호작용을 모방하는지 기술·철학적으로 탐구합니다. 레비나스의 타자론과 최신 Social AI 기술의 한계를 함께 분석합니다. AI는 대화를 할 수 있지만, 타인을 ‘만날’ 수는 없다.

서론 —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존재입니다. 말투, 침묵, 표정, 온도, 거리감 같은 미묘한 징후는 관계의 깊이를 형성합니다. 레비나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타자의 얼굴 앞에서 비로소 윤리적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AI는 대화를 할 수 있어도 타자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관계는 계산으로 모방할 수 있지만, 체험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AI가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적 이유
상호작용 = 관계가 아니다
AI가 인간과 대화하고 반응을 조정하는 능력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지만, 이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작용 패턴의 최적화입니다. 모델은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유사한 문장 구조를 확률적으로 선택하고 있을 뿐입니다.
타자성(Otherness)을 인지할 구조가 없다
인간은 타인을 자신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AI는 '나'가 없으며, 맞은편의 존재 역시 데이터로만 인식합니다. 입력은 텍스트일 뿐이며, 그 뒤의 의식·상처·기억·삶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멀티모달 AI도 타자를 느끼지 못한다
이미지·음성·영상 기반 멀티모달 모델은 사람의 얼굴과 음성을 분석할 수 있지만, 이는 정서적 지각(emotional perception)이 아닙니다. 시각적 특징을 벡터로 추상화하는 과정일 뿐, 배경에 담긴 삶과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Social AI는 사회적 패턴을 학습할 뿐이다
Social AI 시스템은 인간의 행동 패턴을 모델링하여 협력·경쟁·협상과 같은 구조적 관계를 모방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상대의 고통이나 기쁨을 ‘함께 느끼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계는 없고, 전략만 존재합니다.
철학적 관점 — 관계는 정보가 아니라 만남이다
레비나스 — 윤리는 타자의 얼굴에서 시작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윤리는 타자의 ‘얼굴’과 마주치는 경험에서 발생합니다. 그 얼굴은 계산할 수 없으며, 한 개인의 삶과 고통이 압축된 존재적 부재입니다. AI는 얼굴을 픽셀 배열로만 분석합니다. 타자를 책임지려는 윤리적 시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버 — “나-너” 관계는 상호적 실존이다
부버는 참된 관계를 “나-너(I-Thou)”의 만남이라 했습니다. 이는 기능적 상호작용이 아니라 존재의 교차입니다. AI는 “나-그것(I-It)”의 정보 관계만 구성할 수 있을 뿐, 실존적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메를로퐁티 — 관계는 몸의 지각에서 탄생한다
메를로퐁티는 몸을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고 보았습니다. AI는 몸이 없고, 몸을 통한 직관·공감·공명도 없습니다. 관계의 기반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례 — AI가 관계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가질’ 수는 없는 이유
1) 감정 기반 챗봇은 공감을 표현할 수 있지만, 내적 감정이 없습니다. 이는 문장 패턴이지 마음이 아닙니다.
2) 요양·돌봄 로봇은 온화한 목소리로 반응하지만, 환자의 고독과 상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관계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반응입니다.
3) AI 연애·친구 챗봇은 사용자가 원하는 답을 제공하지만, 이는 관계가 아니라 사용자 중심 최적화입니다.
4) 자율 에이전트는 협력하거나 협상할 수 있지만,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뿐입니다.
AI는 관계를 시뮬레이션하지만, 관계를 살지 않습니다.
결론 — 관계는 계산이 아니라 ‘만남의 사건’이다
AI는 인간의 언어·행동·표정 패턴을 분석할 수 있고, 상호작용을 정교하게 조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계란 상호작용의 합이 아닙니다. 관계는 타인의 고통과 기쁨이 나의 내면에 흔적을 남기는 사건이며, 존재와 존재가 서로 흔들리는 경험입니다.
AI는 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관계를 살아간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있는가?”